2021. 8. 1. 08:01ㆍ팀.티파니::(팀포스팅)/팀티,파니생일입미영
모르고 있던 찰나에 에어컨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무심코 에어컨의 온도를 올리고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도, 무심코 메마른 입에서 "덥다...." 라고 내뱉는 날들이 길어졌다. 침대에 늘어지게 누워있어도 기분이 어쩐지 축축 쳐지는 것 같은 날들의 연속. 매일 문자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점점 길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TV에서는 연일 누군가의 땀과 열정이 비춰지고 있지만 정작 내 몸에 흐르는 땀이 더 답답하고 갑갑하기도 한 그런 날. 그러고보니 아주 오랫동안 여러 친구를 만나지 못했고, 맛있는 밥과 예쁜 카페가 내 인생에서 하나둘 지워지고, 거리엔 늘 지나다니던 작고 귀여운 가게들이 하나둘,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간다. 2021년이라는, 어릴 때는 마치 모든게 다 이루어져있을 것만 같았던 꿈의 숫자같은 그 날이 바로 지금인데, 내가 꾸던 꿈은 어디로 바스라져버렸을까. 우린 계속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아가고,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만날 수 없는 날이 길어지니 지나간 콘서트와 무대들을 자꾸 돌려보게 된다.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던 함성과 노래들이 귀를 적시고 어깨를 잡아 이끌게 된다. 화면 속에서 넘실거리는 모습에 애가 타기도 하고 허공에서 멈춘 손짓이 무안하기도 하다. 마음껏 무대를 보지 못하고 힘차게 응원을 하지 못하고 하루도 너를 보지 못하는 날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해보지 못한채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다. 더없이 소중한 날들을 내 인생 안에서 하나하나 지워가면서 그 하루가 너무 텅 비어있어서 입이 쓰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보여주고 싶은데, 가까울 듯 가까워지지 못하는 매일이 너무 안타깝고 애타는 날들 속에 우리가 있다.
백신과 확진자로 가득한 뉴스를 틀어둔 채로, 여전히 하루는 가고 7월이 지나 8월은 온다. 작년에 막 더워질 때즈음 나타난 파니는 아직 돌아가지 않고 서울하늘 아래 남아있다. 최근 몇 년동안 아마도 제일 TV화면으로 자주 보던 해가 아닌가 싶다. TV를 틀면 나오고 잡지를 펼치면 나오고 여전히 SNS를 활발하게 하는 셀럽이었으며 무대를 보러가면 거기에 언제나 서 있었다. 우리의 희망은 큰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처럼 '보고싶을 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는데 이 어렵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작은 꿈 정도는, 그래 이정도는 에라 모르겠다 들어주지 뭐, 하고 하늘에서도 들어주셨나보다. 생일에 늘 들어오던 때보다 조금 더 이르게 한국에 들어와서 여기저기서 발견되던 모습 이후로 의외로 한국에 좀 길게 있다? 싶었더니 이내 찾아온 뮤지컬 소식. 페임 때보다 더더욱 길고 더 고난이도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올해의 가장 큰 수확은 파니가 고정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 이었는데 이미 120% 이루고도 남은 것 같다.
수십번이 넘는 무대에 오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강아지를 대하는 상냥함도 잊지 않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재잘재잘 대화가 끊이지 않고, 셀럽으로서 타고난 끼를 여지없이 발휘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똑같이 걸을 후배들의 앞에서 쇠로 된 이정표가 되어줄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다. 그것이 그의 30대를 출발하는 발걸음들. 올해도 여전히 단단하게 지나간 인생길에 새겨놓았다. 자랑스럽다, 그리고 어쩐지 부럽기도 하다.
바람이 살랑이는 봄의 어느 날, 무대에서 빛이 나는 파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요한 극장의 정적 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남편과 애정남과 변호사들 사이에서 온갖 표정을 짓고, 뻔뻔하지만 당췌 미워할 수 없는 묘한 얼굴로 대사를 이어나간다. 가장 날렵하고 유명세에 절실하며 남을 홀릴 것 같은 매력의 소유자로 비춰진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무대를 지켜봐왔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자의 얼굴은 얼마나 더 신비로운지 모른다. 익살스레 대사를 이어가다가도, 타락하여 욕을 하고 빈정거리는 씬이 있어도, 열망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자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너를 이렇게 오래 지켜봐와서 이런 모습도 볼 수 있게 되는구나, 라고 작게 감격했었다. 하나하나 힘들게 이겨내 왔었으니까, 극중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네가 바래온 희망과 세상이 정말이지 "네가 (우려와 시기와 질투따위를) 찢었으니까". 한국 국민 누구든 네 이름을 들으면 모를 사람이 없는 지금 이 세상이 너와 우리에겐 선물이 아닐까 싶다. 십년이 넘는 시간을 하나하나 잘 버텨내줘서 고맙고, 이 소중함을 내가 계속 지켜볼 수 있게 해줘서 또 고맙다. 매일 더 기대하게 만드는 8월이고, 마침 그 첫 시작의 날이다. <시작의 아이콘>에겐 정말 매년 걸맞는 날이 아닐 수 없는걸.
어쩌면 지금 우리의 세상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해본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말이기도 하고, 지금처럼 얼굴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덧없는 희망의 멘트도 날려본다. 세계로 뻗어나가야 할 인재이지만, 모래성에 자꾸 물을 붓는 것처럼 우리의 손에서 빠져나가지않고 곁에서 더 단단한 성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파니는 잡을 수 없는 바람과도 같으니 부디 튼튼하고 강한 태풍이 되어 다시 돌아가더라도, 너의 자리가 우리에게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2021년의 여름에 파니와 우리는 공연을 하고 인터뷰 기사를 보고 광고를 찍은 '아주 알찬 여름'으로 기억에 남겠지. 올해는 이미 너무 충분하게 행복한 선물을 받았다. 물론 네가 아직 준비하고 있을 더 큰 선물들까지도 더더욱 기대가 된다.
생일이라고 뭘 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닿지 못할 글을 쓴다. 사실은 이렇게 쓸데없이 긴 글을 전부 지우고 "생일 축하해!" 한마디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너무, 너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할 말이 많을 예정이지.
내년 생일까지,
여전히 나는
너에 대해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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